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9월 5일 토요일
발행 2026-09-04
경향 문화

'즉흥성'의 배신, 우리 마음의 '인지부조화'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전현무씨의 '즉흥 카자흐스탄 여행'이 사실은 어느 정도 기획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제작진은 해명에 나섰지만, '즉흥'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계획'은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듯합니다. 우리는 왜 방송의 '진정성'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 예측 불가능한 우연이 주는 재미를 갈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흥성'은 우리에게 삶의 활력과 대리 만족을 선사하는 마법 같은 요소로 다가옵니다. 특히 연출되지 않은 듯 보이는 연예인의 일상은, 그들의 '진짜 모습'을 엿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즉흥적'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여행이 사실은 '선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였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필자는 이때 '인지부조화'라는 심리 현상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인지부조화'는 한 개인이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불일치하거나 모순되는 신념, 태도, 행동을 가질 때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감입니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0년대에 제시한 이 개념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신념, 태도 등)를 바꾸거나 새로운 인지를 추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시청자들은 두 가지 상충하는 '인지'를 갖게 됩니다. 첫째, "나는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즉흥 여행'을 진짜라고 믿고 즐거워했다." 둘째, "사실 이 여행은 제작진의 사전 기획이 있었다." 이 두 인지는 서로 충돌하며 불쾌한 심리적 긴장, 즉 '부조화'를 일으킵니다. 이 부조화가 클수록 우리는 더 큰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즉흥'이라는 표현 자체가 방송적 허용 범위에 속한다"며 자신의 인지를 '재구성'하여 부조화를 줄이려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방송은 다 가짜였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부조화를 해소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실망스러우니 이제부터는 보지 않겠다"며 '행동'을 바꾸는 방식으로 부조화를 줄이기도 합니다. 필자의 경험상, 우리가 특정 대상에 대해 강한 기대나 애착을 가질수록, 그 대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인지부조화의 강도는 더욱 커집니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졌을 때,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과도 유사한 감정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방송 속 '즉흥성'이라는 환상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때로는 '완벽한 즉흥'처럼 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곤 합니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노력 없이 얻은' 듯한 완벽한 결과물이나 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실제로는 수많은 계획과 편집의 산물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우리는 타인의 '진짜'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삶은 얼마나 '진짜'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흥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혹은, 어쩌면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언제나 순수한 무계획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즉흥'이든 '계획'이든, 그 안에 담긴 진심과 성실함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통제될 수도, 완벽하게 즉흥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불완전함과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 더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 우리 마음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켜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