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속삭임, '미주신경'의 경고
유명 방송인이 갑작스럽게 활동을 중단한다는 소식은 언제나 우리에게 적잖은 궁금증을 안겨줍니다. 특히 그 이유가 '미주신경 기능 저하'라는 다소 생소한 병명일 때는 더욱 그렇지요. MBC는 6일, 이상순 씨가 미주신경 기능저하와 관련된 신경계 증상으로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라디오 진행을 쉬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에게는 '이효리 남편'이라는 수식어로도 친숙한 그의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그의 소식을 접하며,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참으로 정직한 존재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계기판처럼, 문제가 생기면 경고등을 켜서 우리에게 알려주지요. '미주신경'은 우리 몸의 중요한 자율신경계 중 하나로, 소화, 심장 박동, 호흡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조절합니다. 이 신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몸이 더 이상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강력한 '외침'을 보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중요한 '몸의 속삭임'을 애써 외면하려 할까요? 아마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잠시 멈추는 것이 곧 '낙오'를 의미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내부 신호를 무시하고 외부의 요구에만 몰두하는 경향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시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욕구들이 충족될 때 진정한 의미의 성장과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상순 씨의 경우처럼, 끊임없이 대중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DJ로서 '유능감'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즉, 몸이 보내는 휴식의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일을 지속하는 것이, 겉으로는 '자율적'인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자율적인 행동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필자 역시 한때는 '쉬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밤늦도록 연구실에 남아 논문을 쓰고, 주말에도 상담 사례를 검토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험을 했습니다. 인후염인가 싶어 병원에 갔지만,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아,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자신이 살던 세계가 가상현실임을 깨닫는 것처럼, 필자도 제 몸이 보내는 신호가 현실의 경고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습니다.
'자기결정이론'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율성'이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욕구와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이 휴식을 원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멈출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율성'의 발현이자, 스스로의 '유능감'을 장기적으로 지켜내는 길입니다. 어쩌면 이상순 씨의 '미주신경'은 그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귀 기울이라는 준엄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바깥세상의 소음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는 무감해진 것은 아닐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서,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몸의 속삭임, 당신은 듣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