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무엇’ 아닌 ‘나’로 사는 용기
‘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조용히 우리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면서 쓰는 여러 '가면'들을 언급하며, 궁극적으로 '나로서의 삶'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필자는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주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로 온전히 존재하고 있을까요?
우리 삶은 끊임없이 다양한 역할과 기대로 채워집니다. 누군가의 자녀, 부모, 배우자, 직장인, 학생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름표를 달고 살아갑니다. 이 이름표들 속에서 우리는 때로 진짜 '나'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처럼, 맡은 역할에 충실하느라 정작 자신의 대사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데시(Edward L. Deci)와 라이언(Richard M. Ryan)은 인간에게 세 가지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그리고 '관계성(Relatedness)'입니다.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우리는 내적으로 동기 부여되고, 심리적으로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중 그림책의 메시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개념이 바로 '자율성'입니다.
자율성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의 행동을 통제한다고 느끼는 경험을 말합니다. 단순히 '자유'와는 조금 다릅니다. '자유'가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자율성'은 내면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과정에 가깝습니다. 어린아이가 스스로 어떤 놀이를 할지 선택하고 몰입할 때, 우리는 그 아이의 눈빛에서 반짝이는 '자율성'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깊은 무력감과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의 무엇 아닌 나'로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입니다. 사회적 시선이나 타인의 기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내는 것이지요.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홀로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때로는 '고립'이나 '이기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데시와 라이언이 말한 또 다른 중요한 욕구인 '관계성'이 등장합니다. '관계성'은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된 채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 속 소녀가 '공원'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듯이, 우리는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나'로 존재하되,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말입니다.
결국, '누구의 무엇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진정한 모습으로 타인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이 자신의 천재성을 숨기지 않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은 '자율성'과 '관계성'이 균형을 이룰 때 얻게 되는 성장의 아름다운 예시일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내 안의 괴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필자 역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오늘 하루 '진정한 나'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춰 서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작은 순간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작은 선택이 우리 삶에 예상치 못한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작은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