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정답' 앞에서, 인간의 '망설임'이 주는 의미

올해 출판계는 '인간선언 Homo duduri(호모 두두리)'라는 주제로 인간이 과연 인공지능(AI)을 다룰 슬기를 지녔는지 질문했습니다. 또한 '누구세요?'라는 화두를 던지며 AI 시대에 인간 존재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AI가 주는 빠르고 정확한 '정답' 앞에서 인간의 '망설임'과 '고뇌'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필자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속도와 효율성을 맹신하며 살아왔습니다. 정보는 빠르고 정확해야 하고, 결과는 명확해야 하며, 심지어 우리의 감정조차도 명쾌하게 정의되기를 원하죠. AI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완벽한 도구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순식간에 내놓는 AI 앞에서, 인간의 느린 사유와 불확실한 감정은 때로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행위만 보더라도, AI는 막힘없이 이야기를 엮어내고 시를 창작하며, 심지어 특정 작가의 문체까지 모방해냅니다. 과연 인간 작가의 '망설임'이 그 앞에서 무슨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완벽주의'라는 심리적 경향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성향을 뜻합니다. 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우리를 옥죄고 성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번스(David Burns)는 완벽주의가 종종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비롯되며, 이는 결국 불안과 우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AI는 이런 면에서 완벽주의자의 이상적인 동반자처럼 보입니다. 오류 없는 문장, 논리 정연한 구성, 방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AI는 인간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실패의 두려움을 제거해줄 것처럼 다가오죠. 하지만 과연 그 '완벽한 정답'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필자는 그 '망설임' 속에 인간다움의 핵심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창작은 단순히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내재적 동기를 설명할 때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이야기합니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세 가지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 즉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그리고 '관계성(relatedness)'을 충족할 때 가장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AI가 주는 '정답'은 우리에게 유능감을 느끼게 할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의 '자율성'과 '관계성'을 박탈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고뇌 끝에 내놓은 한 문장, 오랜 망설임 끝에 선택한 단어 하나에는 그 사람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가 속한 시대의 그림자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조합한 결과물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과 씨름하며 얻어낸 '의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장인이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깎아낸 목공예품이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과 다른 가치를 지니듯 말입니다. 기계가 완벽하게 그려낸 그림보다는, 서툰 아이의 그림에서 우리는 순수한 감동과 '관계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아이의 '자율적인' 선택과 '유능감을 향한'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AI가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물에 감탄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인간적인 '울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망설임'은 무지나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깊은 사유와 진정성,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의 흔적입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유능하게' 헤쳐나가며, 타인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아직 '망설임'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재촉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히려 그 망설임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AI가 줄 수 없는, 오직 당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불완전한 완벽함'을 말입니다.
우리 안의 '망설임'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용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