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지 못해' 자책하는 경찰, 공감 피로의 늪

피해자전담경찰들이 예산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피해자들을 '좀 더 돕지 못하는' 현실에 자책감을 느낀다는 소식입니다. 이들의 고군분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밝히려는 숭고한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말 못할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며 돕는다는 것, 과연 어떤 마음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일일까요?
필자는 종종 우리 주변의 '돕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그리고 이 기사의 피해자전담경찰까지. 이들의 직업은 단순히 기술이나 지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들의 감정에 깊이 공명하며, 때로는 그 고통을 기꺼이 함께 짊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감정노동'이라 부릅니다. 감정노동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업무 수행에 필요한 방식으로 조절하고 표현해야 하는 모든 직업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표정 관리나 친절한 응대를 넘어, 내면의 감정 상태까지도 업무의 일부로 요구받는 것이지요. 피해자전담경찰의 경우, 피해자의 절망과 분노, 슬픔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이 '감정노동'의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공감 능력은 업무의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마음의 부담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노동이 지속되고 심화될 때 발생합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노출되면서, 돕는 이들 역시 깊은 심리적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를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라고 합니다. 공감 피로는 미국의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Charles Figley)가 외상 경험자를 돕는 전문가들이 겪는 이차적 외상 스트레스에 주목하며 제시한 개념입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너무 많이 흡수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빨아들이지 못하고 축 처지는 것처럼, 돕는 이의 마음이 타인의 고통으로 가득 차 더 이상 공감할 여력조차 없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기력감, 절망감, 분노, 불면증, 심지어는 회의감까지 동반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전담경찰이 '좀 더 돕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공감 능력 자체가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해 손상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를 돕고 싶어도, 마음의 스펀지가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흡수해 버린 탓에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입니다.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역경이나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도 다시 정상적인 심리 상태로 돌아오고, 심지어는 그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힘을 넘어,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마음의 근육과 같습니다. 피해자전담경찰에게도 이러한 회복탄력성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하지만 무한정 발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의 지지, 충분한 휴식, 동료와의 공감, 그리고 자기 돌봄을 위한 시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결국은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원과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돕는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들의 '감정노동'을 인정하고, '공감 피로'의 존재를 이해하며, 그들이 '회복탄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 그들의 자책감을 덜어주고,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헌신 뒤에 숨겨진 마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
필자 역시 상담 현장에서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타인의 고통에 직면하며, '내가 과연 이 사람을 충분히 돕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스스로 자책하는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그때마다 저 역시 마음속 스펀지가 꽉 차 버린 듯한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어쩌면 모든 '돕는 이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책감 속에서도 나 자신을 돌보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돕는 당신의 마음도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