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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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8일 목요일
발행 2026-10-07
경향 사회

잠실야구장, 우리 마음의 '관계성'은 어디로?

잠실야구장, 우리 마음의 '관계성'은 어디로?
지난 7일, 서울 잠실야구장이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마지막 '잠실 더비'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철거를 앞둔 이곳에는 만원 관중의 함성과 아쉬움이 교차했습니다. 필자는 그날의 사진들을 보며, 단순히 한 건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묘한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 상실감은 야구장을 넘어, 우리 삶의 더 깊은 곳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특정 공간이나 대상에 깊은 애착을 느끼는 것일까요?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입니다. 자기결정이론의 대가인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성장을 경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관계성'은 타인과 연결되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말합니다. 잠실야구장은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장소를 넘어, 팬들에게는 이 '관계성'을 충족시켜주는 거대한 '자기대상'이었던 셈입니다. 야구장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환호하고 탄식합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좌절하며, 옆자리의 낯선 이와도 하이파이브를 나눕니다. 이 모든 경험은 '우리'라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특정 팀의 팬이라는 '집단 정체성'은 단순히 취향을 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깊은 '소속감'을 부여하고, 이는 곧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야구장은 마치 우리 모두의 '정신적 보금자리'처럼 기능해왔던 것이지요. 이제 그 공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관계성'의 한 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아마도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금 이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적 감정은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이라는 현상을 통해 더욱 강력해집니다. '사회적 전염'이란 특정 감정이나 행동이 한 개인에게서 다른 개인에게로, 나아가 집단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감정이 전파되는 것이지요. 르 봉(Gustave Le Bon)과 같은 초기 사회심리학자들은 군중 속에서 개인이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감정에 휩쓸리는 현상을 설명하며 이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야구장에서의 응원 열기는 바로 이 '사회적 전염'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명의 팬이 외치는 함성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그것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경기장 전체를 뒤덮는 순간, 우리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선 강력한 '집단적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경기에 모인 만원 관중은 단순한 이별을 넘어, 수십 년간 함께 쌓아온 추억과 감정을 '사회적 전염'을 통해 다시 한번 공유하고 응집하는 의식을 치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잠실야구장에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곳에서 처음 느꼈던 '함께'라는 감정은 아직도 필자의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습니다. 야구 경기의 승패를 떠나, 그 공간 안에서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고 하나가 되는 경험은 어린 필자에게 '관계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제 잠실야구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돔구장으로 재탄생할 예정입니다. 변화는 때론 두렵지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잠실야구장에서 얻었던 '관계성'과 '집단 정체성'의 경험은 새로운 공간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공간 자체보다는, 그 공간을 채우고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과거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되,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니까요.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반복합니다. 소중한 것을 떠나보낼 때마다 상실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 상실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관계성'의 의미를 찾아나갑니다. 잠실야구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함께'라는 가치를 기억하며,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관계와 공간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변화 속에서도 '함께'의 가치를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