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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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 금요일
발행 2026-10-08
한겨레 사회

삶의 마지막을 계획하는 마음

삶의 마지막을 계획하는 마음
삶의 끝을 미리 내다보고, 그 끝을 자신의 의지대로 디자인하려는 시도. 우리 사회에 이런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필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언뜻 보면 다소 서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현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삶의 유한성을 직면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 본연의 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을 회피하고 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는 그의 저서 '죽음의 부정(The Denial of Death)'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필연적인 죽음을 인지하기 때문에, 이 '죽음 불안'으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심리적 방어 기제를 발전시켜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원불멸을 꿈꾸거나, 자신을 뛰어넘는 거대한 존재에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혹은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죽음을 초월하려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미래를 계획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영화 '코코'에서 주인공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찾으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죽음을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 잡고 있을까요? 이들은 아마도 '죽음 불안'을 단순히 회피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그 불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일 겁니다. 이러한 태도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강조했던 '의미 추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프랭클은 나치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의미를 발견할 때 고통을 초월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는 단순히 죽음을 앞둔 정리 작업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은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자신이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싶은지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종종 상담실에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한때는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일상도, 죽음이라는 명확한 끝이 다가오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마지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궁극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마치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를 돌보듯, 유한한 삶 속에서 자신이 가꾸고 싶은 의미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었을 때, 후회 없이 '나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는 오롯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지금을 충실히 사는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