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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발행 2026-10-11
한겨레 사회

'재미'라는 이름의 '사회적 전염', 우리는 괜찮을까?

'재미'라는 이름의 '사회적 전염', 우리는 괜찮을까?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낮엔 모범생, 밤엔 밈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통해 혐오 밈이나 가짜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이 이를 '재밌잖아요'라는 말로 소비하는 현상이 포착되어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재미'로 여기며, 그 뒤편에 어떤 마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걸까요? 필자는 오늘 이 '재미'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을 함께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특정 정보나 감정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는 현상을 우리는 '사회적 전염'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감기나 유행성 질병처럼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집단 내에서 특정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 심지어 감정까지도 전파되는 심리적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그의 저서 '군중 심리'에서 개인이 군중 속에 있을 때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감정적으로 동조하며 행동하게 되는 경향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마치 하품이 전염되듯, 혹은 특정 옷차림이 유행처럼 번지듯, 온라인 공간에서는 하나의 '밈'이나 '가짜뉴스'가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게 됩니다. 특히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혹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과 유사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이 전염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두 따라 하는 특정 연예인의 헤어스타일을 저도 모르게 따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멋’이었고, ‘재미’였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사회적 전염'의 물결에 휩쓸렸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사회적 전염'은 또 다른 심리적 기제와 맞물려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바로 '확증편향'입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아론 벡이 정립한 '인지왜곡' 개념도 이와 맥을 같이합니다. '인지왜곡'은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신념으로 인해 현실을 잘못 해석하는 패턴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알고리즘은 그 선입견을 강화할 만한 정보만을 계속해서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보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확증'하게 되죠. 마치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모두 조작된 것임을 알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살아가듯, 우리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필터 버블'이라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점차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됩니다. '5·18 혐오? 재밌잖아요'라는 말은 이러한 '확증편향'과 '인지왜곡'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밈'이라는 가벼운 형태로 소비하며, 그 안에 담긴 폭력성과 혐오를 '재미'로 둔갑시키는 것이죠. 이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무디게 만들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사회적 전염'과 '확증편향'의 파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나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내가 지금 접하는 정보가 어디서 왔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는 능력입니다. 어린 시절, 필자는 시험을 망치고도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해'라고 단정하며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필자에게는 '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방법으로 공부해야 할까?'와 같은 '메타인지적 질문'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찾아보고, 불편하더라도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은 우리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재미'라는 이름으로 소비하는 것들이 과연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혹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장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묻고 싶습니다. 혐오와 가짜뉴스의 '사회적 전염'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건강한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 챙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우리를 지키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