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한 용기, 혹은 외로운 덫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의 '블랙리스트'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가 2년 만에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회사가 고소를 철회했음에도 경찰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진실을 알리려 했던 한 사람의 용기가 오히려 칼날이 되어 돌아온 듯한 이 현실은 우리에게 씁쓸함을 안겨줍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조직의 부당함을 고발한 사람이 왜 죄인이 되는 걸까요? 아마도 거대한 조직과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 그리고 인간 본연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이 사건을 접하며 '심리적 소유감'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심리적 소유감이란 개인이 특정 대상이나 아이디어, 심지어는 정보에 대해 '내 것'이라는 강한 감정적 연결과 통제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소유의 법적 권리나 물리적 점유와는 다르게, 심리적 차원에서 '내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낡은 컵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것, 혹은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프로젝트에 대해 강한 책임감과 애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심리적 소유감의 발현입니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명성'이나 '내부 정보'가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내부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침해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는 어쩌면 조직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소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강력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익제보자는 어떤 마음으로 그 위험한 길을 택했을까요? 아마도 그에게는 '자기효능감'이 중요한 동력이었을 것입니다. 자기효능감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내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자기효능감입니다. 공익제보자는 아마도 조직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이 거대한 조직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로 작용했을 테지요. 하지만 이러한 자기효능감은 외부 환경, 특히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 다른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을 때 쉽게 좌절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구나'라는 무력감은 자기효능감을 갉아먹고, 결국 침묵을 택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집단이 내부의 갈등이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고 처벌함으로써,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불행을 정화하기 위해 특정 인물이나 동물을 희생시켰던 것과 유사하게, 현대 사회의 조직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부의 복잡한 원인을 직시하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킨 자'를 찾아 그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공익제보자가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유출시킨 자', 즉 '조직의 명성을 훼손한 자'로 낙인찍히며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조직 내부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누구든 조직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작용하여, 유사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진실을 말한 용기가 오히려 덫이 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공익제보자의 외로운 싸움이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그 파문이 모여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지지로 이어지기를, 필자는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기효능감'일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그 무게를 함께 견뎌야 합니다.